좋좋소 개발 인생 시작
28세 - 첫 면접 합격
대단한 경험이었다.
어머니가 맞춰준 정장과 아버지가 사주신 빛나는 구두. 검정 양복에 파란 넥타이.
당시 필자는 왕년에 군대에서 병장으로 전역하였고,
대학교 4학년을 마친 선배 중에 선배였으며, 많은 후배들이 따르며 대학교를 즐겁게 다녔었다.
면접 가는 길
여름이었다. 8월에 갓 대학교를 졸업한 필자는 사회에선 애송이에 불과했다. 면접 보는 오늘은 어떤가? 지하철에서 내려보니 이마에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때는 2010년. 스마트폰 없이 찾아가야 했던 면접장에 가는 길은 멀고 험난 했다.
면접 10분 전 면접관에게 전화를 했다.
“제가 3번 출구인데요.”
“네 직진해서 오른쪽 골목 보시면…”
어떻게 잘 찾아갔다.
면접 시작
면접관은 1명이었고 중년의 아저씨였다.
1대1 면접으로 시작되었으며 매우 긴장 하였다.
“자기소개해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군인이신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근면, 성실, 사랑이라는 가훈과 함께 … 가르침을 받았으며, 가사를 하시는 어머님 아래에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자기소개였다.
하지만 면접관분은 매우 흡족해하셨다.
다음 질문은 날카로웠다.
“아버지가 군인이라고 하셨는데 계급이 어떻게 되시죠?”
“XX이셨으며, 올해 전역하셨습니다.”
“아르바이트 해본 적 있어요?”
“우편 집중국에서 새벽 택배 분리, 편의점, PC방, 학교에서 다양하게…”
질문은 개인사 5가지 정도였고, 면접은 매우 쉬었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없었다.
나머지 시간은 ERP, PRM 에 대한 설명이었으며, 처음 듣는 설명이라 뭐가 뭔지 잘 몰랐으나 대단한 업무를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다음은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2주마다 토요일은 10시부터 2시까지 근무하고 있는데 가능하세요?”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집에 가는 길
나중에 알고 보니 면접관은 사장님이셨다.
전화가 울린다.
“합격하셨습니다. 내일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29세 - 취업
면접에 쓴맛을 보았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었다.
합격한 회사는 두 곳이였다.
- 연봉 2,200만원 SI 업체
- 연봉 1,800만원 자체 서비스 중소기업
당시 SI 업체에 안 좋은 인식이 있었고 3년 차 대리로 속이고 일을 들어가야 했다. 솔직히 내 실력이 그정도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체 서비스 회사에 입사하기로 한다.
부장님은 2분 이셨고,
- 개발을 잘 하시는 프로젝트 전체에 사용된 프레임워크를 개발하신 부장님
- 전체 스펙을 관리하는 부장님
역시 사회 신입으로
들어온 필자에게 비중있는 일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필자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1년은 버틴다.
란 마음을 다짐하고 중소 기업 개발업무의 일선에 진입하게 된다.
하는 일은 매우 간단 하였다. 청소, 믹스커피 정리, 테스트 결과 엑셀 정리 등 큰 비중은 아니었으나 회사에 적응하려고 매우 노력하였다.
첫 월급을 받았다. 수습 5개월은 70%만 나온다고 했다. 세금 때고 실수령 금액이 월 94만원 정도 되었다. 쉽게 입사가 가능한 이유가 다 있었다.
수습은 6개월이었으나, 필자의 고생하는 모습을 본 사장님은 1개월 당겨주셨다.
첫 프로젝트
입사 당시 프로젝트는 진행 중 상황이었다.
C#, MS-SQL
을 다루는 프로젝트였고, 사내 프레임워크가 잘 되어 있어 화면과 기능을 매우 쉽게 찍어낼 수 있었다.
당시 프레임워크를 뜯어보고 공부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에게 그런 통찰력과 실력은 없었다.
화면을 찍어내고 스펙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사장님의 제안
야근과 철야는 매일 반복되었다. 방 2칸짜리 집을 회사 근처에 임대하여 제공해 주었는데, 사원~부장까지 모두 합숙을 하는 형태였다.
사장님은 어느 2주 정도 출근 했을 때 나에게 제안을 하셨다.
“집에서 이불 가져올래요? 같이 합숙하면 재미 있을 거에요.”
필자는 Yes맨이었고, 고민할 거 없이 이불을 가져왔다.
다행히 모두가 야근과 철야를 하므로 나는 눈치 없이 매일 밤 코드를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회사에서 제공해준 집은 바로 위가 1호선 지하철이 지나가는 길이라 아침마다 지진이 난 것 처럼 집이 흔들렸다. 그래서 철야를 하더라도 아침 8시 출근은 문제 없었다.
첫 프로젝트의 성취감은 너무나도 뿌듯했다.
6개월이 지나고
어느날 전체 스펙을 관리하시는 부장님의 한마디가 내 심장을 찔렀다.
“너는 개발자가 아니야. 코더일 뿐이야.”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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